삶의 열정 한 스푼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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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열정 한 스푼 '여름'
  • 김송이 아트큐레이터, ㈜일상예술 대표
  • 승인 2024.07.24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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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1836~1902, 프랑스)

스웨덴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여름없이 보내는 일년과 같다.” 얼만큼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사랑한다는 말을 꼭 연인에게만 사용하지는 말아보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가 제대로 사랑하는 것의 시작이 아닐까. 삶의 열정은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름 속으로 성큼 들어서며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난다. 때로 정신이 하나도 없이 마구 쏟아지는 빗속이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이 미간을 잔뜩 찡그리게도 한다.

이렇게 뜨거운 태양과 후련한 비바람이 공존하는 여름은 꽤 매력적인 계절이다. 쇠붙이가 하나의 도구로 만들어지려면 몇 번의 담금질이 필요한 것처럼 여름은 우리 일상을 벼리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중 내 인생에서의 여름은 무엇이 되어 남을까 하는 것에 다다른다. 여름같은 삶을 살았던 화가있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1836~1902년, 프랑스)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바로 유명세를 떨치며 사교계 부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제임스 티소- SUMMER 1878.
제임스 티소- SUMMER 1878.

파리에서 이름 좀 있다하는 귀족과 상인들은 너도 나도 그에게 그림을 부탁했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 자자했다. 단박에 부와 명예를 얻은 그에게 보불전쟁 파병소식이 전해졌다. 티소는 파병보다는 영국으로의 피난을 선택하고 곧장 배 위에 오른다.

티소의 실력은 영국에서도 이미 유명했기에 도착하자마자 귀부인들의 작품 의뢰가 줄을 이었다. 그가 영국에서 1년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은 고급귀족의 1년 수입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렇게 쉽게 영국에 정착한 그에게 여름이 찾아왔다.

티소의 여름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운명이 바뀌었다고 하는 게 더 적당할 것같다. 티소의 여름은 다름아닌 아름다운 여인 캐슬린이다. “캐슬린 뉴턴”

작품의 모델이 필요한 그에게 지인이 소개해 준 여인인 캐슬린은 1876년 이후의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처음 캐슬린은 단순한 모델이었지만 아름다운 그녀는 점점 티소의 삶에 스며들었고 그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폭풍이 몰아치기도 하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기도 하는 계절.

티소의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힘들었던 6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불멸의 연인이라하면 베토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불멸의 연인>이 떠오르겠지만 필자는 가장 먼저 제임스 티소를 떠올린다.

캐슬린을 만난 이후 모든 작품은 캐슬린을 위한 작품이었고 이후의 모든 삶은 온통 캐슬린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캐슬린에 대한 안좋은 소문때문이었다. 캐슬린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지만 미혼모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귀부인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질투했고 약점은 추문으로 만들어 티소를 공격했다. 그럼에도 티소가 캐슬린을 멀리하지 않자 상류층 사람들은 더 이상 작품을 의뢰하지 않았고 티소의 수입도 점점 없어지게 되었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아도 티소는 캐슬린을 놓지 않았다.

캐슬린이 결핵을 앓기 시작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티소는 그녀의 시간들을 그림으로 그려 두었다. 제임스 티소의 여름은 이렇게 가고 있었다. 캐슬린의 생명이 사그러져가는 것과 함께.

1882년 캐슬린 뉴턴이 죽고 티소는 그렇게 좋아하던 영국을 영원히 떠났다. 케슬린을 잃어버린 영국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프랑스로 돌아간 티소는 수많은 여인들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으나 누구에게도 마음을 하락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았다고 한다.

제임스 티소를 담금질한 캐슬린이라는 여름은 티소의 작품으로 남아 우리와 그 삶을 여전히 같이 하고 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만난 여름은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혹은 강인하기도 하다. 사랑을 한다는 건 상대방을 위한 감정이 아니다.

결국 나 자신을 너무 아끼기 때문에 그가, 또는 그녀가 나를 위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을 때 슬프고 아픈 건 온 마음을 기대고 있던 이가 사라졌기 때문에 기댔던 마음이 쓰러져 상처입었기에 아프고 슬픈거다.

아픈 마음을 추스렸을 때는 또 사랑할 사람을 찾아 기대어 살아간다. 사람은 혼자 꼿꼿하지 못한 거라고 하지 않은가 그래서 사람 人자가 서로 기대있는 이유라고 하지 않나. 그렇다면 삶의 열정은 기대어 있을 때만 가능한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서문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삶의 열정이 생긴다는 말은 보류해야겠다. 이렇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품은 또 한번 내 시선을 잡아 끈다.

오늘 제임스 티소의 작품 <SUMMER> 속 캐슬린 뉴턴의 모습은 유독 슬프게 아름답다. 티소의 여름이었던 캐슬린. 그녀에게 티소도 역시 황홀한 여름이었을까? 티소가 캐슬린을 보듬었던 스토리를 보면 캐슬린에게 티소는 안온한 온실이었다는 생각이다.

캐슬린이 그려진 작품 중에 실제로 <온실>이라는 작품이 있기도 해서 더욱 그렇게 생각되는 거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작품과 티소, 캐슬린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시 내 인생의 여름이 남겨줄 무엇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일과 사랑이 뒤섞인 격렬한 일상들은 아직 충분히 뜨겁고, 충분한 비와 바람이며 그만큼 푸르다.

어쩌면 삶이란 건 나이가 주는 무엇이 아니라 여름같은 열정의 자국으로 이어가지는 게 아닐까? “사랑이 없는 인생은 여름없이 보내는 일년과 같다.” 이 문장이 독자들의 삶에서도 발견되어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김송이 (주) 일상예술 대표 네오아트센터 기획팀장.

김송이 :

아트큐레이터. 명화와 클래식 음악 해설가이며 아트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주식회사 일상예술 대표이자 수암골 네오아트센터 기획팀장으로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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