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의 멋을 느끼게 하는 ‘조팝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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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 멋을 느끼게 하는 ‘조팝꽃’
  • 충북인뉴스
  • 승인 2007.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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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수 충북숲해설가협회 회원
조팝꽃이 다 지고 나서야 조팝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뾰족뾰족 잎눈이 나올 무렵부터 꽃이 피고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황홀했던 봄 날 이었습니다. 줄기에 도는 푸른 고집,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이다”라는 말뜻을 오늘에야 실감합니다.

   
요즘처럼 달력이 흔하지 않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식물이나 밤과 낮의 길이, 또는 집앞에 서 있는 나무 그림자의 기울기를 대중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콩 언제 심어요?” 하면 “그건 감꽃 피면 심어” 또 다른 콩을 보면 “그건 감꽃 지면 심어” 이렇게 말입니다.

그 중 건조한곳을 싫어해 산 능선이나 길 가장자리, 밭뚝에 흔히 자라는 조팝나무는 벼농사의 지표 식물이였습니다. 조팝나무 앙상한 가지에 뾰족뾰족 잎이 돋을무렵 농부들은 못자리를 했습니다. 꽃진 자리에 좁쌀만한 씨앗이 몽울몽울 맺히기 시작하면 모내기를 하고, 여름이 지나고 조팝나무 잎이 누렇게 물들기 시작하면 벼베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조팝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깃든 나무입니다.

창백하리 만치 어여쁜, 그래서 더 정이가는 조팝꽃은 가느다란 줄기가 무게를 이기지 못할 만큼 많은 꽃을 피웁니다.
단정한 사랑, 노력하다의 꽃말을 지닌 조팝꽃은 꽃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흰 눈이 날리는 것 같다고 하여 설유화라 부르기도 합니다. 선인들은 조팝나무의 매력을 꽃이 피어 있을 때보다 낙화에 있다고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심산의 멋을 느끼게 하는 조팝꽃, 이 꽃을 싸리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며, 이팝나무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팝나무는 낙엽교목으로 공원이나 가로수로 식재되어 있지만 조팝나무는 산야에서 1.5∼2m 정도로 자라는 관목입니다. 조팝나무는 꽃이 피기 전 꽃몽울과 꽃진자리에 맺히는 씨앗이 좁쌀을 닮았으며, 꽃 모양이 좁쌀을 튀겨 놓은 듯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더할 수 없는 진한 향은 없지만 마음 저리도록 진한 감동을 주는 꽃입니다.

밭뚝에서 잘 자라는 탓에 농사에 방해가 된다하여 해마다 몇 차례씩 잘려 나가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꿋꿋하게 땅속줄기를 뻗고 자라기 때문에 자연 고사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바람이 전하는 우렁한 몸짓에 귀 기울여 지는 계절입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옷 털고 일어설 때마다 한 줌씩 여름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5월의 초입, 중앙공원을 지나다 조팝나무처럼 휘어진 등을 곧추 세우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봅니다. 일그러진 웃음, 봄볕 한 자락 당겨 조팝꽃처럼 새하얀 웃음 한 입 피워 문 정박한 목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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