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연구용역, 첫발부터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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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연구용역, 첫발부터 길을 잃다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8.12.04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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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월드.밀레니엄타운 조성사업 연구용역 ‘도마 위’
충북개발연구원, 임무 수행만 하고 나면 책임 없다?

차이나월드와 밀레니엄타운 조성사업은 올해 충북도의 주요사업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위기에 봉착했다. 둘 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태다. 차이나월드 조성사업은 올해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차라리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밀레니엄타운은 사업의 핵인 국제웨딩빌리지 조성 건이 도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둘 다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는 민자유치 사업이어서 요즘같은 불황과 맞물려 잘 되겠느냐는 회의감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이것이 세계적인 불경기탓 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충북도와 연구용역을 맡은 충북개발연구원이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계획단계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얘기다. 두 사업을 중심으로 과정상의 문제를 취재했다.

   
▲ 충북의 최대 사업 중 하나인 차이나월드 조성과 말레니엄타운 부지 활용이 불투명해졌다. 이에 대해 충북도와 충북개발연구원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밀레니엄타운 부지.

공허한 말잔치로 남은 용역

지난 11월 27일 충북도의회 행정소방위원회(위원장 연만흠)의 충북개발연구원 행정사무감사시 김환동 의원(괴산.한나라당)은 뼈있는 질문을 던졌다. “중국어마을 조성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는데 용역비 5000만원은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이수희 충북개발연구원장은 “당초 ‘중국어마을 조성사업에 대한 기본구상’ 연구용역의 발주처는 충북도 기획관실이었다. 이것이 균형발전본부로 넘어가면서 ‘차이나월드’사업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연구용역의 범위가 넘어간 것이다. 중국어마을을 조성하는 문제는 연구용역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고 답변했다.

다시 말해 연구원에서는 의뢰받은 연구용역만 끝내면 되는 것이고, 이후의 문제는 관계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충북도 출연기관인 충북개발연구원도 책임이 있다는 게 도민들의 반응이다.

충북개발연구원은 지난 2006년 11월~2007년 8월 충북도로부터 용역비 5200만원을 받고 중국어마을 조성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면적이 330만 제곱미터로 1조8000억원 가량의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매우 큰 프로젝트다.

또 차이나월드는 교육.유통.문화.숙박.체육시설이 동시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으로 가닥을 잡았다. 놀고 먹고 즐기면서 동시에 공부도 하는 공간이다. 즉 중국어 교육시설을 비롯해 비즈니스센터.음식타운.역사문화체험관.차이나타운.놀이시설.호텔.골프장 등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당시 연구원측은 이에 대해 “대규모 시설로 외자유치가 용이하고, 관광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충북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중국인의 국내 관광 거점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보면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하다. 지난해 4월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청회 때 참석자들이 지적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1조 8000억원이라는 대단한 자금을 모을 수 있느냐는 것과 성격이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한 참석자는 “충북도 1년 예산 2조원을 육박하는 엄청난 돈을 투입했다가 혹시 망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며 반대했다. 아무리 충북도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 민자유치사업이라고 이렇게 허황되게 잡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차이나월드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종합선물세트’라는 점이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 것도 못할 수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날 참석했던 김경석 충북대 기획처장은 “차이나월드는 교육시설인지 위락시설인지 분명치 않다. 둘 중 하나로 성격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혹시 교육을 빙자한 관광위락시설이 아닐까 걱정된다”면서 “발 맛사지 하러 간다면 언어습득보다 발 맛사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차이나월드에 갈 때는 놀이공원 가려고 가는 게 아닐텐데 이 점이 너무 부각돼 있고, 중국의 모조품 가져다 놓는다고 얼마나 감탄할 것인가”라며 매우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중국관련 교육시설을 설립하는 쪽으로 관심을 가졌던 충북대는 곧 포기했다.

중국으로 유학가지 않아도 이 곳에서 수준높은 중국어를 배울 수 있고, 충북이 차제에 통상.국제교류.관광레저.문화 등의 특화된 분야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다는 차이나월드는 현재 전혀 진척이 안되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투자유치설명회를 열었을 때 삼성.현대.대우.GS 등의 대기업과 중국인 등 430명이 몰려와 성황을 이뤘으나 7월 1차 공모를 실시했을 때는 단 한 명도 신청을 하지 않았다.

이후 충북도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그러자 도의회 건설문화위원회(위원장 이언구)는 행정사무감사시 1조8000억원의 민자유치 허구성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이에 대해 도는 12월 중으로 전면검토한 뒤 추진방향을 결정짓겠다고 답변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차이나월드 조성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제천시와 청원군도 손을 놓은 상태다. 청원군 관계자는 “충북도의 방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도.연구원 ‘서로 네탓’
충북개발연구원의 신뢰에 금이 간 또 하나의 용역은 밀레니엄타운 조성사업에 관한 것이다. 충북도에서 연구용역을 많이 발주한 것으로 유명한 밀레니엄타운은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연구조사를 6번이나 했다. 그동안 용역비만 해도 17억여원이 들어갔다.

이 중 2000년, 2008년 연구용역을 충북개발연구원이 맡았다. 강태원 도의회 의원(비례대표.한나라당)은 “처음 했던 용역을 조금씩 조금씩 수정했을뿐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연구조사 기관에서는 전면 재검토 했어야 함에도 일부만 바꾸고 말았다”며 연구조사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그리고 김법기 의원(청주.한나라당)은 “밀레니엄타운은 용역을 남발한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기관에서 타당성조사를 할 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게다가 충북도가 확신없이 국제웨딩빌리지 조성에 관한 MOU를 체결하면서 심지어 ‘사기꾼이 들어온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며 충북개발연구원의 용역과 충북도의 공동 책임을 물었다.

현재 밀레니엄타운 조성사업 중 가장 문제가 되고 반대여론이 많은 것은 국제웨딩빌리지 조성 건이다. 충북개발연구원은 ‘밀레니엄타운 조성사업 타당성조사’ 용역에서 국제웨딩빌리지에 관한 내용을 수정검토대안으로 올렸다.

이들은 “최종보고회 논의사항에서 충북도, 청주시, 충북개발공사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이를 보완한 수정대안을 충북도에서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웨딩빌리지를 파티형식의 결혼식, 해외원정 결혼식 열풍 등 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색다른 결혼문화에 부응하여 차별화된 웨딩문화타운으로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당초 이 연구용역에는 국제웨딩빌리지 조성안이 들어있지 않았으나 용역이 끝날무렵 삽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현재 밀레니엄타운내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핵심사업이 된 국제웨딩빌리지가 이렇게 ‘어정쩡하게’ 들어간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구원측은 “최종보고안을 충북도에서 보고 이 부분을 넣어달라고 해서 수정검토대안으로 집어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는 도의회 회의석상에도 올라왔다. 김광수 도의회 의원(청주.민주당)은 지난 10월 20일 있었던 도정질문에서 이 과정을 지적했다.

“충북개발연구원이 기일내 성과품 납품을 위해 사업에 대한 적법성, 타당성, 효과성 등에 대한 연구 검토할 시간적 여유없이 최종보고서 내용중 연구기관에서 수개월 동안 연구한 아트빌리지, 모던 갤러리, 주차장 등의 사업을 삭제, 또는 축소한 뒤 집행부의 안대로 웨딩빌리지 사업을 반영해 납품기일인 5월 14일 납품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밀레니엄타운 타당성조사 최종 4차보고 회의시까지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국제웨딩빌리지 사업이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도민 공청회 등이 없이 갑작스럽게 사업에 포함 확정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질문했으나 정우택 지사는 엉뚱하게도 “국제웨딩빌리지는 수익성과 공익성의 조화를 위한 외자유치사업”이라고 답변했다. 묘하게 피해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해 충북도측은 “당시 충북개발연구원에서 국제웨딩빌리지가 좋은 사업이라며 받아들이고 이제 와서 우리가 넣으라고 해서 넣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맞받아쳤다.

어쨌든 두 기관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충북개발연구원의 연구용역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충북도가 사업추진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는 셈이 된다. 때문에 웨딩빌리지조성 사업을 제안한 (주)끼트레이딩의 건전성이나 이 업체와 PF(프로젝트 파이낸셜)방식으로 참여한다는 일본 업체들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 시점에 충북개발연구원 또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언구 도의회 건설문화위원장은 “국제웨딩빌리지 MOU 체결식에 가보니 전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금 5000만원의 (주)끼트레이딩이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도 의심스럽고 이 자리에 일본업체 대표 한 명 오지 않은 것도 문제다. 과정이 문제가 있으면 결과도 문제가 있다. 연구용역을 진행한 충북개발연구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결국 도 예산만 낭비하고 만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화점식 나열 도움 안돼”
충북개발연구원은 올해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전국 개발원평가에서 연구분야 1위, 경영분야 6위, 종합 2위 성적을 거뒀다. 그래서 도의회 행정소방위는 행정사무감사 때 이를 칭찬했다.

전국 개발원 중 예산이 가장 적고, 청사도 없으며, 상대적으로 연구원도 적은 열악한 상황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참고로 충북개발연구원의 총 인원은 90명이다. 이 중 연구원이 28명이고 비정규직이 51명이다. 단 연구원 한 명은 위촉연구원 2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올해 안으로 연구직 2명과 일반직 1명을 채용할 계획으로 있다. 이수희 원장 취임후 연구원 인력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결론적으로 연구원 측에서는 인력에 비해 많은 연구과제물들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하지만 충북도민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느끼는 부분에서는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충북도의 한 공무원은 “충북도의 거의 모든 연구용역을 충북개발연구원에 주고 있다. 서울 등의 연구소로 보내면 우선 연구비가 많이 들고, 외지에 준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충북개발연구원의 연구는 학술연구가 아님에도 백화점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연구, 접근방식이 정확하고 명료한 연구가 필요한데 뜬구름 잡는 식이 많은 게 불만이다.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일 때는 충북도의 예산규모를 파악해 구체적으로 얼마를, 어떻게 써야 한다고 명시해주는 게 좋다”며 “그러나 간혹 무책임하고 애프터서비스를 해주지 않는 연구용역 때문에 공무원들이 힘들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연구원측은 기본과제에 대해 외부전문가 2명의 평가를 받아 보완하고, 정책과제는 의뢰부서의 정책활용도를 조사하며 수탁과제는 발주처의 고객만족을 조사해 연구원 개인평가에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19건의 수탁과제 중 우수나 보통이 16건, 미흡이 3건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수탁과제는 용역비를 받고 연구하는 과제물. 이 제도가 실시된 것은 지난 2006년 도의회 행정사무감사 때 행정자치위가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이고, 발주처 역시 거의 충북도나 도내 기초지자체라서 얼마나 정확하게 만족도 조사를 했는가는 미지수다. 도민들은 충북개발연구원이 용역발주기관의 ‘입맛’에 맞는 연구물들을 내놓는 기관이라는 곱잖은 시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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