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학원 후손 갈등 ‘일촉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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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학원 후손 갈등 ‘일촉즉발’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07.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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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대 재단, 김준철 전 이사장 이래 청암係 독무대
동생 석정係, “이사회 참여 물러설 수 없다” 배수진

한강 이남의 사학 가운데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청주대학교를 비롯해 고등학교 3개, 중학교 2개, 초등학교 1개 등 모두 7개 학교를 거느린 학교법인 청석학원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공동설립자인 형 청암 김원근 선생의 후손(이하 청암계)과 동생 석정 김영근 선생의 후손(이하 석정계)들이 이사회 참여를 둘러싸고 1935년 학교법인 설립 이후 74년 만에 일대격전을 벌일 태세이기 때문이다.

   
▲ 일제강점기 부를 축적한 형제기업인인 청암 김원근, 석정 김영근 형제가 설립한 청주대 재단 청석학원이 설립자 사망 이후 석정계가 배제된 채 운영돼 왔다는 주장이 석정계 후손들을 중심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청주대 교정에 있는 청암(좌)과 석정(우) 선생의 동상.
청암의 장손인 청주대 김윤배 총장의 임기가 올 연말로 마무리되는데다, 9명의 이사 가운데 4명은 2007년 6월부터 2009년 3월 사이에 이미 임기가 만료됐거나 작고한 함에 따라 현재는 과반수에 해당하는 5명만 남아있는 상태다. 더욱이 당연직 이사인 김 총장을 제외한 나머지 이사 4명도 오는 9월 임기가 마무리됨에 따라 이사진의 전면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감사 역시 2명 가운데 1명의 임기가 2007년 3월에 만료돼 1명만 남아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행 사립학교법에 따를 경우 정원의 4분의 1 이상 개방형이사 선임을 선행해야 하는데 청석학원은 이를 이행하지 않아 이미 임기가 만료된 이사진을 충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이사회의 골간이 흔들리면서 이 기회에 개방형이사를 적극 선임하고, 학교설립의 한 축이었던 석정계를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석정의 후손들은 물론 청석학원의 발자취를 알고 있는 ‘원로들의 입’을 통해서도 전파되고 있다.

석정 김영근 선생이 세상을 떠난 1976년 이후 물밑에서 진행돼온 후손들의 이사회 지분참여 갈등이 33년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설립자 집안의 가족사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청암계(형)의 좌장인 김준철(87) 전 이사장은 원래 석정(동생) 선생의 셋째 아들이었다. 그러나 청암 선생이 후사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하게 되자 회갑을 맞던 해에 김 전 이사장을 양자로 맞아들였다. 고졸인 형들과 달리 일본에서 대학을 수료하고 연세대를 졸업한 학력 때문에 두 형을 제치고 학원운영의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다. 김 전 이사장은 1965년 청암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숙부인 석정의 양보로 이사장직을 승계하게 된다.

묵은 갈등은 이로부터 11년이 흐른 1976년, 석정 선생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본격화됐다. 석정 선생 생존 시까지는 조카인 김 전 이사장과 숙부인 석정선생이 각각 두 집안의 대표로 이사회에 포진했기에 힘의 균형이 유지됐으나 석정 사후에 석정계 후손들의 참여가 전면 배제되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김준철 전 이사장이 청암의 양자로 가기 전, 큰형인 준성과 작은형 준명은 부친인 석정의 생존 시까지 이사회에 아예 이름조차 걸지 못했다. 대신 석정의 장손이었던 김창배(당시 31세)씨가 1970~72년 사이 잠시 이름을 올렸다가 내린 것이 석정계의 마지막 뒷모습이었다.

이후 청암선생의 미망인인 김경이 여사까지 이사회에 참여하고, 청주대 학내분규가 있을 때에는 김준철 전 이사장의 부인인 김옥희 여사가 이사회에 포진했지만 이사회에서 석정계의 그림자는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다.

청석학원의 내력을 꿰고 있는 한 인사는 “김 전 이사장이 늦게 가정을 꾸려 36살에 김윤배 현 총장을 낳았다. 사촌형들과 10살~20살까지 차이가 나다보니 김 전 이사장이 조카들의 참여를 기를 쓰고 막았던 것 같다. 특히 자신은 양자로 왔고, 두 형의 조카(男)들이 5명이나 되다보니 더욱 경계심이 컸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결국 김준철 전 이사장은 재단운영에 있어 지속적으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고, 그 후광으로 자신의 큰아들이 청주대 총장에 이르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아낸 1935년 재단법인 청주상업학교 설립 허가원은 동생 김영근 앞으로 교부됐다. 이사장 승인은 형 김원근으로 돼 있어 동생이 설립절차를 추진하고 형을 앞세웠음을 알 수 있다.
석정계 “조부의 명예를 위할 뿐”
작은아버지의 카리스마에 눌려 지내던 석정계가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만은 아니다. 재단분규가 극에 달하던 1993년에는 당시 김준철 이사장의 독단적인 학원 운영을 비판하며 학원 운영 정상화를 촉구하는 신문광고를 게재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2006년에는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사회에 석정계의 참여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논리다툼도 벌어졌다. 석정계 후손들은 2006년 7월10일 이사회에 보낸 공문에서 “2006년 7월1일 발효되는 개정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설립자 직계가족의 이사회 참여 비율이 4분의 1 이하로 개정된 만큼 법이 제한한 범위 내에서 당연한 권리를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는 1995년 전후 청석학원의 재단비리와 관련해 교육부가 설립자 직계가족의 이사회 참여를 전면 제한해 온 것에 대한 책임을 청암계에 물으며, 학원이 정상화된 만큼 청암계와 석정계의 동시 참여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였다. 청석학원의 이사 정원이 9명인 만큼 4분의 1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2명의 직계가족이 참여할 수 있고 이를 청암계와 석정계가 각각 1명씩 양분하자는 얘기다.

이에 대해 9월5일 이사회가 보낸 답변의 요지는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따라 개방형이사(외부인사) 3명을 먼저 선임해야 하고 1995년 현 이사진 취임 이후 직계가족은 이사회에 참여하지 않았다. 직계가족의 참여는 후손(청암계와 석정계) 간의 협의를 거쳐 이사회에 요청하면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형제의 난’에 적극 관여하기보다는 일단 집안문제로 치부하고 거리를 두겠다는 이사회의 입장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사회 안효석 총무과장은 “학교법인이 주식회사도 아닌데 지분을 가지고 자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큰 가닥은 가족들 사이에서 결정해야 한다. 이사회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석정의 차남 김준명(사망)씨의 장남인 김현배씨는 이에 대해 “1995년 교육부에 의해 직계가족의 이사회 참여가 배제된 것은 그동안 학원을 운영해온 청암계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에도 고령에 의지도 없는 이사회를 구성해 뒤에서 법인을 움직여왔다. 법적으로 대응하려했다면 진작 했겠지만 할아버지 두 분의 우애를 생각할 때 후손들이 싸울 수는 없었다. 석정계의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명예를 찾기 위한 것일 뿐 이미 청석학원은 가족들의 손을 떠나 공기(公器)가 됐다”고 주장했다.

70년 전 정부기록 찾고 ‘가문서약’까지
이달 안으로 2006년 7월 이후 이사회에 보내는 세 번째 공문을 준비하고 있는 석정계의 비장한 각오는 철저한 준비태세에서 읽을 수 있다. 1994년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찾아낸 법인설립당시의 허가서류를 비롯해 초기의 법인정관 등도 증거자료로 첨부할 계획이다. 석정 김영근 선생이 학교설립에 형 못지않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과 두 집안이 동일한 비율로 참여키로 결의했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소화 10년(1935년) 조선총독 우가끼 명의로 된 ‘재단법인 설립허가원’에 따르면 ‘김영근’에게 교부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단 이사장 인가는 ‘김원근’ 앞으로 돼있다. 이는 알려진 대로 강원도 원산을 중심으로 해산물 무역을 통해 거부가 된 석정이 사회활동을 함에 있어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항상 형을 내세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밖에 석정계가 증거자료로 제시한 법인 설립당시 정관 제3장 11조에는 이사의 수를 총 10명으로 정하면서 ‘본 법인의 설립자인 김원근, 김영근 또는 그 자손으로서 각각 그 집의 호주인자 2인’, ‘이사회에서 선정한 자 5인, 본 법인이 경영하는 학교에 재임중인 학교장 3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석정계는 또 지난 1월 장남 김준성계 3명, 차남 김준명계 2명 등 손자 5명이 모여서 10가지 서약을 담은 서약서를 만들고 날인했다. 내용은 ‘조부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공동 대처하고 이사회에 참여하되 동시에 들어가거나 순번을 정해 교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출사표에 해당하는 것이다.   

현행 사학법을 고려한다면 청암, 석정계를 포함해 2명이 제한선이고 청암계 김윤배 총장은 당연직으로 별도다. 이에 따라 석정계는 이번 서약을 계기로 청암계나 이사회의 결정과 무관하게 석정계의 몫으로 1명을 추천할 계획이고, 순번을 정할 경우 석정의 큰아들 김준성씨의 2남 김성배씨가 1순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72년 이사회에 참여한 바 있는 장손 김창배씨는 건강이 악화돼 대외활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성배씨는 “작은아버지는 늘 ‘거북한 얘기는 하지 말라’며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의 뜻을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답변을 피해가며 4년이 흐르고, 다시 4년이 흐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길이 열리지 않으면 두드리는 길밖에 더 있겠냐. 이번에도 안 되면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준철 전 이사장 주변도 ‘포용 권유’
석정계의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청암계의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다. 김윤배 총장과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출장 등을 이유로 연결이 되지 않았고, 7월13일 전화인터뷰를 전제로 비서실을 통해 질문지를 보냈으나 7월14일 오후까지 연락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김준철 전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1965년 청석학원에 발을 들여놓은 뒤 법인 기획관리실장, 법인산하 3개 학교를 분리 또는 신설하면서 교장을 맡았던 이상록 전 오송분기역유치위원장을 통해 청석학원에 근무했던 원로들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전 위원장은 “청암, 석정 두 형제분이 공동으로 출자해서 학원을 설립했고, 형님이 (이사장을) 하신 뒤에 동생이 하시게 돼있었는데 사양하셔서 후손인 김준철씨가 승계하게 된 것이다. 형제분들이 결정한 거니까 ‘옳다 그르다’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며 공동설립자의 육영정신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이 전 위원장은 그러나 “이사자리가 여럿이니까 ‘석정 후손도 참여시키는 것이 옳지 않냐’는 사회적인 여론도 있다”면서 “그렇게 참여시켜서 후손들도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 직계가 한 두 사람 더 들어간다고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대학에 참여하고 있을 때도 (김 전 이사장에게) 그런 취지의 건의를 한 적이 있다. 공동설립자인데 흔적을 남기는 것도 필요하다”며 석정계가 참여할 명분은 충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1995년 청석학원 이사장을 맡아 2007년 6월까지 이사장을 역임한 김낙형(86) 전 이사장도 김준철 전 이사장에게 재임시절 석정계를 포용할 것을 여러 차례 건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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