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공원의 노인들은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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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공원의 노인들은 행복하지 않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1.07.13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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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장 센트럴파크 론, 적극적인 노인복지 선행돼야
충북예총 건물 내 빈 공간 활용해 노인강좌 시도하자
매일 300~500명의 노인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공원을 휩쓸고 간다. 비가 오는 날 망선루는 비를 피하기 좋은 피난처이고, 각종 비석 앞에서는 등을 기대고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운다. 점심은 인근 YWCA에서 제공하는 국수로 때우든지 아니면 인근 식당에서 막걸리 한 대접으로 목을 축인다. 최근 한범덕 시장은 이곳을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공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는 노인들이 가장 큰 숙제다.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편집자

   
▲ 비가 오는 날 망선루는 비를 피하기 좋은 피난처일 뿐이다.

만약 100명의 노인들이 중앙공원에 있다면 70~80대가 48명이고, 남자가 91명이다. 초졸이 46명이고, 청주시민은 84명, 진천에서도 5명이 간간히 놀러온다. 사람들은 중앙공원에 오는 이유가 급식 때문이라고하는데 밥 먹으러 오는 사람은 정작 4명뿐이다. 86명은 동료와 함께 여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에 온다.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은 지난 2008년부터 해마다 중앙공원에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 같은 수치는 2010년 60대 이상 노인 2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결과다. 그런데 친구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정작 놀만한 꺼리가 없다. 윷놀이와 화투정도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놀이의 전부다. 최근에는 화투 단속이 떠 중앙경로당에서만 점 10원짜리 패를 돌린다. 경로당에서 만난 이방후(분평동)씨는 “20년 전부터 이곳에 왔는데 달라진 게 없어. 뭐 기대하는 것도 없고…”라며 고개를 돌렸다.

노인들의 외로운 섬

중앙공원은 도심 한 가운데 위치한 노인들의 섬이다. 경제·사회적인 기반이 취약한 사람들의 마지막 비상구다. 공원에는 일명 ‘박카스 아줌마’가 존재하고 인근 허름한 여관에서 성매매가 버젓이 이뤄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비교적 화려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한봉환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지사는 “노인들의 문화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외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벽이 있다. 그런데 그 문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안타깝다. 신문보도가 이를 부추긴다. 실제 성매매는 60대 미만의 부랑자들이 하는데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인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비쳐진다”며 “그들의 존재와 문화를 인정하고, 중앙공원에 있는 노인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을 비롯한 상당보건소, 수동시니어클럽, 청주알코올센터, 충청북도노인보호전문기관, 인구보건복지협회 등이 연합해 ‘이동 보건소’를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둘째 넷째 화요일에 열고 있다. 이동 보건소 서비스를 통해 건강 체크 및 일자리, 알코올중독, 성에 관한 성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오지만 윷을 던지는 게 놀이의 전부다.

시장님이 우리를 내쫓는다고?

한범덕 시장은 최근 “중앙공원을 청주의 센트럴파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도심 속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중원공원을 청주 읍성 터와 공원 내 문화재를 연계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쉬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

중앙공원에는 많은 문화재와 청주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서원경 치소가 청주읍성에 있었다면 중앙공원은 1300여 년 전부터 이 나라의 의미 있는 장소였다. 충청병마절도사영문이 있고, 천년 세월을 기다린 압각수에는 역사적인 이야기가 있다. 또한 청주성탈환의 주역이었던 의병장 조헌, 승병장 영규, 지역의병장인 박춘무의 기적비와 한말 의병장 한봉수 송공비가 있다. 현대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한민국독립기념비, 5.16기념비청주향약비, 사회단체기념비, 청주시민의 노래비, 어린이헌장, 청주시민헌장 등 각종 비석들이 쌓여있다. 망선루 복원도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 시장의 센트럴파크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노인’이다. 그래서 중앙공원에 터를 잡은 노인들을 어떻게 다른 곳으로 옮기느냐가 논의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아침마다 버스를 대절해 문암생태공원으로 가는 방향도 생각해봤다. 중앙공원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차라리 공기 좋은 곳에서 게이트볼 등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데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앙공원을 역사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 20명의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이들은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도시 건축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 문화적인 발굴과 실질적인 공원확충 등을 벌일 계획이다.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자

지역의 한 문화예술인은 “그동안 노인을 ‘문제’로만 인식했다. 그것이 문제다. 오히려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열어 시민을 흡수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성안길은 젊고 밝은 이미지인데 중앙공원은 어두운 이미지다. 이를 개선시키기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중앙공원 옆 충북예총이 입주한 건물에는 청주문화관 전시실 및 협회사무실이 있지만 행사가 없어 비어있을 때가 많다. 이를 노인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한 현재 충북예총이 사무실을 쓰고 있는 건물을 의미 있게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현재 이 건물에는 충북예총과 청주예총, 각 예술협회 사무실과 청주문화관 1,2,3,4 전시실이 있지만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청주문화관 전시실의 경우 1년에 94일만이 대관되는 데 행사내용 또한 중고등학교 문학회 발표회가 주를 이뤄 변화가 필요하다. 건물 4층에는 각 협회 사무실이 있지만 1년 내내 문이 잠겨있는 곳도 많다.

또 충북예총이 노인대상 사회문화예술교육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중앙공원 노인이 대상이 아니라 충북노인복지회관에 가서 사업을 펼친다.

   
▲ 청주문화관의 경우 전시가 1년에 1/4밖에 안된다. 이 또한 중고등학교 행사가 대부분이다. 7월에는 단 이틀 산남고등학교 회화동호회 전시가 잡혔다.
이를 두고 한 복지 관계자는 “충북예총이 28년째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한 번도 노인 대상 프로그램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감스럽다. 예술단체 뿐만 아니라 청주시 또한 노인문제를 그동안 방치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상용 충북예총 사무처장은 “예술단체가 프로그램을 벌인다고 얼마나 변화할 수 있겠는가. 프로젝트 사업보다는 시 차원에서 노인복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하지만 충북예총의 건물 내 빈 공간과 전시실을 노인들의 공간으로 변모시켜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한 문화기획자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강좌, 서예교실 등을 이곳에서 열면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각의 차이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중앙공원의 역사적인 자원을 스토리텔링하고 교육청과 연계해 역사교육을 진행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분명한 것은 중앙공원에 있는 노인이 행복하지 않다면 센트럴파크가 된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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