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묻는 것조차 잔인하단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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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묻는 것조차 잔인하단 생각이…”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1.08.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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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각지대 현장을 가다 ①기초생활수급자]봉명동에 사는 5남매 사연
TV출연해봤자 얼마 안 가 지원 '뚝'

복지사각지대는 제도권 안에 들어오지 못한, 들어오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하지만 제도권 안에 있어도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충청리뷰는 복지사각지대를 주제로 노인부부, 장애인부부,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차상위 계층 등 유형별로 시리즈 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 아이들에게 놀이는 텔레비전 시청 뿐이다.

봉명동의 한 연립주택. 입구부터 쓰레기가 너부러져있다. 악취가 코를 찔렸다. 쓰레기장 같은 이곳에서 4남매와 아버지가 살고 있다. 아버지 김동명(가명)씨는 오늘도 아침부터 폐지를 주우러 나갔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워도 한 달 70만원을 벌기가 어렵다.

이 가정은 기초생활수급자로 86만원을 지원받는다. 4남매는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면 유치원에, 학교에 간다. 그런데 요즘 같은 방학기간이 제일 문제다.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은 그저 지나간 프로를 계속해서 돌려보거나 낡은 컴퓨터로 게임을 하는 게 놀이의 전부다. 아이들은 시트콤 ‘하이킥 3’을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달 전 쯤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정신질환이 있던 어머니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부업을 위해 집안 가득 물건을 쌓아놓았지만 아이들을 씻기지도 청소를 하지도 않았다. 16살에 시집 와 네 명의 아이를 낳고 아직도 서른이 안 된 젊은 엄마는 육아의 부담 때문에 결국 집을 나갔다.

지금 아이들을 돌봐주는 이는 첫째 철수(가명·16)다. 철수는 아버지가 이혼한 후 오래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운천동에서 살고 있다. 김동명 씨는 재혼했다. 그러니까 방학을 맞아 철수가 버스를 타고 와 아버지가 올 때까지 이복동생들을 돌봐주는 것이다. 청소도 하고 밥도 한다지만 살림은 도통 손에 안 익는다.

“청소하는 게 제일 힘들어요. 청소기가 없어서….”식당에 나가는 어머니가 가끔 반찬을 해서 준다. “밥을 하면 반찬은 엄마가 해 주는 것으로 먹고, 가끔 라면 먹고 그래요.”

점심은 최근 사회적 기업 ‘행복도시락’에서 방학기간 도시락을 지원해줘서 근심을 덜었다. 방학기간에는 시에서 식권 3000원짜리가 나오지만 ‘재래시장 상품권’이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또 동네에 가맹점도 1~2개뿐이다.

김 씨네 가족은 몇 해 전 <KBS동행>에 출연했다. 5살 된 막내 은수가 태어나자마자 심장병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했지만 돈이 없어 애를 태울 때 방송을 타게 됐다. 방송 이후 은수는 수술을 잘 마쳤고, 또 방 한 칸 살림에서 방 세 칸짜리 연립주택 전세로 이사까지 했다.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최신형 냉장고가 있는 것도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이었다. 당장 닥친 어려움은 해결했지만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게 힘에 부친다.

둘째 경수(가명·13)는 친구와 ‘메타슬러2’게임을 내내 했다. 컴퓨터 게임을 독점하는 것은 언제나 둘째 경수다. “아빠가 2시간만 게임을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꿈이 가수인 셋째 지수(가명·10)는 웃기만 한다.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인지도 말하기가 쑥스럽다. 그저 텔레비전에서 눈을 못 뗀다.

   
막내 은수는 몸이 다 회복되지는 못했다. 지수가 말한다. “은수가 오늘 토했어요.” 그러고 보니 바닥에는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토한 아이가 오늘 제대로 밥을 먹었는지 약을 먹었는지 물어봐도 대답이 시원치 않다. 아이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지난번 방송에 출연하면서 얼굴에 알려져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문과 침묵이 계속됐다. 이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지에는 알 수 없는 낙서들로 가득 메워져 있을 뿐 책 한권을 찾을 수 없다. 막내 은수는 작은 자동차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 흔한 블록도 뽀로로 캐릭터 장난감도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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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00원 급식비 지원의 딜레마

청주시 여성가족과는 방학기간에 초·중·고등학생 만 6세부터 18세미만 취약계층 아동 9800여명에게 급식을 지원한다. 소년소녀가장, 부모가 복역 중인 자녀, 부모 병원 입원 자녀, 기초생활 수급자, 차상위계층 등이다. 학교 및 각 동에서 대상자를 파악해 구와 시로 올려 선정한다.

대상자들은 재래시장 상품권을 받는다. 1일 지원액은 3000원. 이번 여름방학의 경우 41일×3000원 총 12만 3000원을 지원받았다. 3000원과 5000원짜리 상품권을 섞어 한 번에 지급된다. 재래시장 상품권을 주는 이유는 두 가지. 재래시장도 살리고, 부모가 재래시장에서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 먹으라는 의도다.

하지만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가정에서 이를 지키기는 어렵다. 제천시의 경우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고, 충주시의 경우 바우처제도를 활용중이다. 바우처제도는 체크카드를 주고 가맹점에서 포인트 내에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하면 특히 여름에 식중독 사고 등 위험성이 높다. 내년부터는 바우처 제도를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청주시내 재래시장 상품권을 받는 식당은 45개다. 동마다 1개에서 많으면 3개가 있다. 한 사회복지사는 “재래시장 상품권을 주면 가게 주인들이 다시 농협에 가서 환전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꺼려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예산을 내려 보낼 때 상품권 형태로 지원하면 감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김 씨네 가정은 다행스럽게도 지난 5월부터 청주시의 ‘사례관리’서비스를 받고 있다. 사례관리는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하는 서비스로 보통 가정마다 6개월~1년 단위로 지원한다. 청주시의 사례관리 담당자는 10명. 이들이 관리하는 사례관리는 281가구. 한 사회복지사는 “보통 담당자마다 25~30가구를 사례관리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사례관리도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대부분 지역아동센터 연결이나 상담서비스 등으로 그치지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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