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사람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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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람과 손
  • 육성준 기자
  • 승인 2012.05.0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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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준 사진부 차장

지난 2009년 5월 23일 본보가 주최하는 ‘산성껴안기’ 행사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들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사실이었다.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도 어수선한 분위기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튿날 청주 상당공원에 분향소가 마련됐다. 소식을 듣고 온 시민들은 점점 그 수가 늘어났다. 분향소인근에는 그를 상징하는 노란 띠와 추모의 글이 곳곳에 붙여졌다.

추모글귀 한편에 노 대통령의 초상화가 미소 띤 얼굴로 게시돼 있었고 명복을 비는 글들이 이어졌다. 나이가 지긋한 한 사람이 한참을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에 흐느끼며 울고 있는 모습이 분명해 보였다.

조심히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지금의 슬픈 상황을 사진으로 꼭 전달하고 싶은데, 초상화를 손으로 한 번 만져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말이 떨어지자 이내 그는 초상화를 어루만졌다. 그 손은 거칠었고 주름도 많았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딘 손으로 보였다. 노 대통령의 인생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고 1면 사진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때 어려운 상황에서 기자의 주문에 기꺼이 응해준 이 손의 주인공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후 추모제에 맞춰 호외도 발행했다. 신문사 창간 이후 처음이었고 분향소에서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상당공원에서 시작된 추모객들의 줄은 도청 서문을 지나 정문까지 이어졌고 밤늦도록 계속됐다. 교복 입은 학생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추모객들에게 떡과 간식 등을 나눠주는 등 밤은 깊었지만 추모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 초상화를 어루만진 손은 거칠었고 주름도 많았다.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딘 손으로 보였다. 노 대통령의 인생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고 1면 사진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카메라 Canon EOS-1D MarkⅢ, 렌즈 70~200mm, 셔터 1/1600, 조리개 9.9, 감도 800

지난달 28일 본사가 주최하는 ‘제12회 산성껴안기 가족산행’을 했다. 일 년의 회사 행사 중 가장 큰 일거리다. 행사를 마친 뒤 직원들과 뒤풀이에서 그 때의 이야기가 나왔고 이 사진이 떠올랐다. 그 때의 그 손과 그 사람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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