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불법대여, 단속 멀고 처벌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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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불법대여, 단속 멀고 처벌 약해
  • 권혁상 기자
  • 승인 2013.12.2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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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지검, 모 건설감리사 23명 불법대여 적발…벌금 500만원 처벌
제보자, ‘감리용역입찰 심사위원 매수·퇴직 공무원 대가성 영입’주장

경기침체와 함께 건설업계의 국가기술자격증 불법 대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09년 관련법이 강화돼 불법대여를 받은 업체는 물론 대여자와 알선자까지 처벌토록 했으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상이 광범위한데다 서류만 갖춰놓고 양측이 입을 맞추면 찾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각 기업체의 유령직원(?)으로 등록된 자격증 대여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경우 실업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본보에 제보된 청주 모 건설감리회사의 예를 통해 그 실태를 알아본다.

▲ 관행처럼 여겨진 건설업계 자격증 불법대여, 2009년부터 대여자, 대여받은 자, 알선자까지 모두 처벌되도록 법이 강화됐다.(사진은 기사의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 충청리뷰DB

지난 10일 본보 편집국에 청주 모 건설감리회사에 근무했었다는 50대 후반의 A씨가 찾아왔다. 박사학위 소지자로 자신의 자격증을 대여해 주고 부회장 직함으로 일하다 6개월만에 ‘내쫓겼다’고 주장했다. 이후 수사기관에 회사의 자격증 불법대여 등 위법사항에 대해 진정서를 냈고 1년만인 지난 7월 청주지검은 회사 대표 B씨에 대해 벌금 5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회사가 명의대여자 월급통장 관리

검찰의 수사사건 기록을 보면 B대표의 범죄사실은 건설기술관리법 및 국가기술자격법 위반이다. 자신이 운영하는 3개 건설회사에 총 23명의 자격증 불법 대여자를 채용했다는 것이다. 전체 60여명의 직원 가운데 1/3이 이름만 걸친 유령 직원이었던 셈이다.

또한 이같은 유령 직원에 대한 급여 명목으로 ‘15억원 상당의 부외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외자금은 ‘장부없이 이뤄진 자금’ 소위 비자금이다. 명의 대여자들에게 월 40~100만원 가량의 대여료를 주면서 급여 자료에는 정상적인 월급이 지급된 것처럼 꾸며 차액을 빼돌린 것이다.

제보자 A씨의 경우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내 이름의 급여통장을 회사에서 만들어 매월 150만원을 월급으로 입금시킨 뒤 다시 빼내는 방법으로 부외자금을 만들었다. 실제로 받은 월급은 250만원인데 B대표가 자신 명의의 개인 통장에서 빼서 현금으로 건네줬다. 나는 부회장직을 맡아 출근했기 때문에 그 정도를 줬지만 다른 대여자들은 기술사의 경우 100만원이고 대부분 토목기술자들은 40만원 정도 받았다. 급여서류에는 150만원 이상씩 지급한 것으로 했기 때문에 매월 23명의 차액이 얼마나 크겠는가?”

A씨는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이 부정입찰의 뒷돈으로 쓰여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5월 청원군의 책임감리용역 입찰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청주 모대학 교수에게 돈봉투를 직접 전달했다는 것. “회사에서 사전에 심사위원 교수 3명의 명단을 알고 있더라. 더구나 심사 당일 한 교수가 불참통보하는 바람에 청주 Q대학 교수로 갑자기 바뀌었다. 그 사실까지 파악한 B대표가 돈봉투를 주면 Q대학 교수를 만나보라고 해서 아침에 부랴부랴 찾아가서 전달한 적이 있다. 결국 불법으로 만든 비자금으로 더 큰 불법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셈이다”

“대여 단속해야 부적격업체 퇴출”

공모입찰에서 심사위원 명단이 사전에 누설돼 참가업체의 돈로비가 벌어지는 행태가 고스란히 재연된 것이다. 명단 누설은 관련 공무원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실무직원부터 결제라인의 상급자까지 업체와 유착될 경우 전화 한통으로 흘려줄 수 있다.

제보자는 A씨는 유착의혹의 근거로 청원군 모과장이 자신의 뒤를 이어 회사 부회장에 취임한 사실을 지적했다. “5월 책임감리용역 입찰에 해당 과장이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7월에 퇴직하더니 8월에 부회장으로 영입됐다. 뇌물약속죄로 수사해 달라고 진정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로 처리했다.”

실제로 B대표의 확인된 불법사실에 비춰 검찰의 500만원 벌금처분은 최소한의 처벌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우선 명의 불법대여의경우 양벌죄인데다 자격증을 대여받아 허위로 등록한 업체도 행정처분과 형사처분을 동시에 받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23명의 불법 대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고 업체도 적정한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B대표 개인차원에서 벌금 500만원의 ‘페널티’만 받은 셈이다. 이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오히려 자격증 불법대여를 확산시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더구나 부정하게 조성된 15억원의 부의자금에 대해서도 “자금의 대부분을 회사를 위하여 소비한 것으로 인정되고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액수는 1687만원에 불과하다”며 횡령혐의를 무혐의 종결처리했다. A씨는 “1년간의 장기간 수사가 결국 15억원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근거를 회사가 마련하는데 시간을 벌어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비리 수사에서 15억원의 부외자금 가운데 14억8천만원을 정상적인 지출로 인정한 것은 이례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에대해 B대표는 “건설경기가 어려워 직원을 채용하긴 힘들고 자격증 소지자는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다. 현장이 새로 생기면 정식 직원으로 투입시키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재택근무를 한다고 보면 된다. 자격증 대여를 해준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을 형사처벌까지 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검찰에서도 업계의 현실을 감안해 선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5월 청원군 책임감리용역 입찰에 대해서는 “사전에 심사위원 명단을 빼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다. 부회장으로 영입한 모 과장도 그때 심사위원에 포함되지 않았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협박까지 한 A씨에 대해 공갈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더구나 A씨는 현재 다른 모회사에 자격증 대여를 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수사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자격증 불법대여 신고포상금제 도입 추진

국가기술자격증의 불법대여 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단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브로커의 알선 및 관련 업체의 대여 행위는 점점 지능화 및 조직화되고 있는 반면 유관 기관의 단속은 대부분 제보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적발한 국가기술자격증 불법대여 건수는 전국적으로 72건에 불과하다.

 자격증 유형별로는 해양조사산업기사(10건)를 비롯해 토목기사(9건),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7건), 건축기사(6건), 수질환경기사(3건) 등이다. 이 밖에 조경과 전기공사, 전기공사산업, 실내건축, 소방설비, 수질환경자격증 등에서도 불법 대여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들 자격증의 한 해 평균 대여료는 300만원 정도로 많게는 500만∼800만원선에서 거래된다. 산업체 밖에선 부동산중개사 자격증 대여도 늘어나고 있다.

알선 브로커들은 기존 대학 졸업 앨범 등을 이용한 개인정보 취득과 인터넷 취업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구직자들의 이력서를 악용해 불법 대여를 부추기고 있다. 불법 대여에 가담한 자격증 소유자들의 범죄 행위에 대한 안이한 사고도 불법 대여 근절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적발될 확률이 적다는 말에 쉽게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단속 기관인 고용노동부와 건설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는 자격증 취득 인구가 워낙 많아 조사 접근 자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단속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회에서 신고포상금제를 도입을 골자로 한 불법 자격증 대여에 관한 개정안이 계류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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