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노동자 사망사고, 고용주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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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노동자 사망사고, 고용주 '나몰라라'
  • 경철수 기자
  • 승인 2011.06.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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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교육도 없이 미숙련공 현장 배치… 50분만에 안전사고 발생
산재처리 차일피일… 유족 정신적 고통·체류비 부담 가중 '분통'

   
▲ 지난 달 24일 중국인 노동자 유족인 자녀들이 청주노동인권센터 조광복 노무사를 찾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청원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가 중국인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소극적으로 다뤄 눈총을 받고 있다. 사건발생 20여일이 지나도록 회사 대표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유족에 대한 적절한 위로의 말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회사가 알선한 노무사가 산재처리를 차일피일 미뤄 근로복지공단의 유족보상 조차 늦어지면서 새로운 노무사를 고용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항공료에 체류비용까지 늘어나는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유족 보상이 늦어지면서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큰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급하게 한국에 들어온 아들 조모씨(31)는 오는 9월25일 예정되어 있던 결혼식까지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일 오전 9시50분께 청원의 한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중국인 노동자 조모씨(61·청주시 상당구 우암동)가 파쇄기에 몸이 딸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조 씨는 청주의 한 용역업체로부터 소개를 받아 사고당일 청원의 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일하게 됐다. 그런데 한 번도 기계를 다뤄 보지 않은 조 씨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 시켰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청주노동인권센터 조광복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신규 인력을 채용하거나 작업내용을 변경할 경우 일용직은 적어도 1시간 이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며 "하지만 고인의 사고시점 등을 고려할 때에 충분한 사전 설명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사업주·알선업체 서로 책임회피"
실제 해당 업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조 씨의 친형(68)도 "사고가 난 파쇄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안전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아무런 안전장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사장은 유족에게 진심어린 위로의 말 한 마디 없었다"며 "몸의 반 이상이 훼손되어 피를 흘리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기계를 거꾸로 돌려 수습한 뒤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이날 오전 11시40분께 숨졌다"고 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 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기계·기구, 그 밖의 설비에 의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만약 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며 "사업주가 고용관계를 회피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는 등 죄질이 나빠 보인다. 사고 후 7일 만에 장례를 치르도록 산재처리 하나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나마 해 준 것이 장례비용을 제공한 것이다. 노동부는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한국에 온 딸 조모씨(34)는 "중국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듯 해 못 마땅하고 서운하다"며 "사장을 만나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데 한 번 만나주지 않는다. 유가족이 한국에 와 7일 만에 장례를 치렀다. 엄마는 매우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들 조 씨(31)는 "한국에서 일하는 중국인 친구들이 많아 손가락이나 사지절단 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전해 들어 왔지만 내게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산업현장에서 안전교육을 제대로 해 주셔서 다시는 이런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특히 고용관계를 둘러싸고 사업주와 일용직 알선업체가 책임 회피를 하며 20여일이 지나도록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 분하기까지 하다"고 강조했다. 조 노무사는 "폐기물 처리업체는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난 사고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파견이 되어 산업현장에서의 안전관리 소홀 이외에도 가중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고용관계 따지다 늑장 산재처리"
폐기물 처리업체 관계자는 "처음 고용한 노무사로부터 고용관계가 애매모호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회사 직인 없이 산재처리를 하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며 "하지만 우리 사업장에서 난 사고이고 장례비용도 제공했다. 누구보다 고인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유족과 사장의 면담도 추진했으나 유족측이 기자회견 일정 등을 이유로 미루면서 이뤄지지 못했다. 28일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처리여부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여 그대로 따를 예정이다. 이후 유족보상 등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기계작동법은 충분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전했다.

아들 조 씨는 "아버지의 산재처리가 늦어지면서 체류 일정이 늘어나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며 "청주의 한 병원에 보관중인 아버지의 유골함도 기한이 다 되어 부모님이 거처하던 우암동의 단칸방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어머니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를 통해 일자리 소개업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일자리 소개업자는 근로자의 업무능력이나 숙련도에 따라 적절한 일자리를 소개해 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란 얘기다. 이번 사고의 경우도 건축현장 폐기물을 분쇄하는 위험한 기계를 다뤄보지 못했던 조 씨에게 일이 배당 되면서 이 같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전에 기계 작동법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안전조치를 강구하지 않은 사업주의 책임도 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안전사고에 대해 경찰과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은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교포 2세인 조씨는 3년 전 친인척들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취업비자로 전환해 일용노동자로 일해 왔다. 그의 하루 일당은 8만5000원으로 알선비 1만원과 차량 운행비 5000원 등을 제하고 7만 원 정도를 받아 생활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 송영실 차장은 "28일 사업장 조사후 고용주 보상문제(산재처리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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