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반민주적 담론의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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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반민주적 담론의 각주
  •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 승인 2022.05.1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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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탁월성 원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혼합 원칙 (1)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플라톤(좌)과 아리스토텔레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플라톤(좌)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시민들의 직접적이고 평등한 정치참여를 기반으로 한 아테네 정치체제는 너무나 민주적이었지만, 그러나 당대의 귀족, 부유층과 엘리트들에게 이는 너무나 불쾌하고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무지한 민중이 자신들과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갖고 심지어 자신들을 지휘하는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불쾌했고, 그들의 평등 요구가 정치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적으로 확대되어 자신들의 재산과 명예를 위협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귀족 출신인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실의 민주 원칙에 대항하고자, 플라톤은 ‘탁월성’ 원칙을,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혼합’ 원칙을 정립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원칙은 이후 2천5백여년 동안 등장하는 수많은 반민주적 담론들의 원형이 되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반민주적 정치철학과 정치공학의 각주(脚註)에는 이 두 원칙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플라톤, 탁월성 원칙과 철인 왕국

플라톤은 인간은 서로 다른 소질과 능력을 타고 나는데, 이렇게 구별된 본성에 따라 사회적 차별과 위계를 만들어야 각자와 공동체 모두에 행복과 훌륭함을 가져온다고 주장합니다. 군인으로서의 소질과 능력을 타고난 자는 군인계급으로, 생산자의 그것을 타고난 자는 생산자계급으로 편제하고, 농부는 농사에만, 구두수선공은 구두수선에만 전념토록 하여, 서로 간에 뒤섞이거나 간섭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정치에도 이러한 신분적·계급적 세계관을 그대로 적용합니다. 정치는 사회의 여러 분야나 직업 중 최고의 지식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정치는 그것에 적합한 지적 탁월함을 갖고 태어나고 그것에 필요한 고도의 교육과 훈련을 받는 철인왕이나 철인계급이 전담해야 하고, 일반 시민들은 아무런 정치적 지위와 권한을 가져서는 안 되고 그들의 통치에 간섭해서도 안 됩니다. 플라톤은‘탁월성’을 갖춘 철인이 지배하는 독재국가만이 궁극적·절대적 정의에 부합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치에서는 지적 탁월함이 필요하고, 그러한 탁월한 정치지식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여 비교 평가할 수 있고, 그 지식은 소수의 엘리트만 가질 수 있고, 그들이 지배자가 될 때 공동체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논리적·현실적으로 얼마나 타당할까요? 플라톤은 정치적 탁월함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의술이나 항해술로 비유할 뿐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지 못합니다. 정의조차 어려운 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하고 평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우기 정치적 문제에 대한 사고와 판단에는 도구적·기술적 지식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목적적·가치적 판단도 항상 내재되어 있습니다. 행정관료·정치학교수·경제전문가라고 하여 일반 시민들보다 더 탁월한 목적적·가치적 식견을 갖추고 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가사 그것이 도구적·기술적 지식에 불과하더라도, 정치학 시험에서 1등을 했다고 혹은 정치학 박사학위가 있다고 그가 탁월한 정치인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탁월한 지식을 갖춘 정치엘리트와 관료들이 반드시 공동의 이익을 지향할 것이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현실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기반이 되거나 자신들과 친화성이 있는 사회지배층의 이익에 더 충실합니다. 가사 그렇지 않더라도 현대의 많은 연구에 의하여 증명된 것은, 정치엘리트와 관료들이란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개인적·조직적·제도적 이익을 유지하고 확대하는데 더욱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혼합 원칙과 혼합 정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에 나오는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처럼 흔히들 플라톤은 이상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라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스승인 플라톤의 신분적·계급적 세계관을 그대로 따랐고, 그가 제시한 탁월성 원칙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서 그 원칙대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탁월함이란 너무나 모호하고 그 우열을 비교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더욱 난감한 것은 자신들과 같은 전문 정치학 교수는 지적 탁월함이라는 기준을 전적으로 환영할 것이지만, 현실의 귀족, 부유층과 일반 시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귀족은 신분에, 부유층은 재산에 비례하여 정치권력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반하여 일반 시민은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서로 싸울 것입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탁월성이라는 이상적 원칙을 대신할 현실적인 것으로 ‘혼합’ 원칙을 내어놓습니다.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최용현 공증인(변호사)

 

이는 각각의 계급이 내세우는 서로 다른 기준(신분, 재산, 동등)을 혼합하여 반영하는 정치체제(혼합 정체)를 구축하자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귀족적·과두적 요소와 민주적 요소를 절충함으로써, 대립하고 갈등하는 계급 또는 정치세력 간의 타협을 이끌어내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실 혼합 원칙은 플라톤이 먼저 구상했던 것입니다. 플라톤은 말년에 이르러, 철인 왕국이 현실에서 실천하기 어렵다면 군주적·귀족적 요소와 민주적 요소를 절충하는 정치체제가 차선책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20년 동안 플라톤의 강의를 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를 받아들여 혼합 원칙을 정립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혼합 원칙은 이후 로마로 건너가 ‘공화주의’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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